‘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라
“지금 같은 추세로 신문과 방송 등 전통적인 매체 이용자가 인터넷 매체로 옮겨가고, 상업적인 이윤 추구만이 미디어 경영의 최고 목표가 된다면 저널리즘의 질은 더욱 황폐해질 것이다. 미래에는 매스미디어 중 인터넷과 라디오만이 성장할 것이다.”
최근 미국저널리즘협회가 신문.방송.인터넷 등 미디어 전체를 연구.분석한 뒤 ‘2004 연차 보고서’에서 내린 결론이다. 세계신문협회(WAN)도 ‘신문 지형의 미래’라는 보고서에서 비슷한 진단을 내린 적이 있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에 국민의 75%가 신문을 구독했다. 하지만 신문 구독률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2004년 미국신문협회(NAA) 통계에 따르면 구독률은 약 50%로 내려갔다. 특히 젊은 층 독자의 감소는 우려할 만하다.
지상파 방송은 더욱 심각해 2004년 3대 지상파 방송인 ABC.NBC.CBS의 주시청 시간대 뉴스 시청률은 93년에 비해 34%포인트나 떨어졌다. CNN.FOX.MSNBC 등 뉴스전문 케이블채널이 생긴 것이 한 원인이지만, 전문가들은 인터넷의 등장과 저널리즘의 질적 저하를 더 큰 원인으로 꼽고 있다. 신문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저널리즘의 질이 떨어진 이유가 뭘까. 학자들은 경영환경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많은 언론사가 생존을 다투는 환경에서 편집.보도국에 재투자할 여력이 없다. 열악한 취재환경 때문에 사실(facts)을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다. 또 독자가 요구하는 심층적인 분석기사.탐사기사가 지면에서 사라지고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데만 급급해 전통적인 저널리즘의 기능인 수문장(gatekeeper) 역할이 약화되고, 정보 가공처리 능력도 떨어지고 있다.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 블레어 기자의 기사 조작.표절 사건이 대표적이다. 뉴욕 타임스는 최근 인터넷을 통해 제보를 받기 시작했고, 다른 신문들도 다양한 방법으로 기사의 정확성을 점검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지난해 일선 기자가 저지른 기사 조작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하월 레인스 전 뉴욕 타임스 편집인은 월간지 애틀랜틱에 “발행인에게 편집국 예산 동결을 철회하라고 강력히 요구하지 못한 것은 큰 실수”라고 말했다. 뒤늦게나마 뉴욕 타임스 회장 아서 설즈버그 주니어는 옴부즈맨 제도를 도입하고 기자들의 경력과 교육을 관리.담당할 인력개발국장을 새로 임명했다. 편집국의 선순환을 위해서다.
그는 무한경쟁시대에선 ‘독자의 선택을 정확히 읽는 능력과 심층(In-depth)저널리즘’이 신문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미국 신문들은 콘텐츠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신문.라디오.TV.인터넷을 통합 활용하는 ‘원 소스-멀티 유스’를 확대하고 있다. 이렇게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언론사들은 저널리즘의 질적 제고와 경영 안정을 위해 지혜를 모으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한국 저널리즘에도 시사점이 적지 않다. 요즘 공영방송들이 독과점 지위를 이용해 자주 ‘오버’하고 있는 건 아닌지, 언론들이 당파 저널리즘에 빠져 본연의 기능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미디어의 다각 경영과 복합 경영을 막고 있는 법 조항은 과연 정당한지 신문의 날을 맞아 우리 모두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