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왜) 기자가 되었는가?

내가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것은 1979년의 취업 상황에서 비롯됐다.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한 시기가 1978년 5월이다. 3월에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니 5월이면 중간고사를 앞둔 시기이다.
군 복무를 마치는 시기가 학기 중간에 놓이면 자칫 9월 졸업이 될 수도 있다. 군 제대 전에 복학 절차를 밟고 수업 일수를 채우기 위해 형이 가끔 대신 출석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군사 훈련(교련 : 학교 군사 훈련) 수업이다. 당시 교련 과목은 필수 과목으로 대리 출석이 까다롭고 출석 미달이면 이수 학점에 영향을 미친다. 나는 복학하면 3학년 1학기이고 형은 대학 4년 생인데 취업 준비와 본인 수업도 벅찬 몸으로 동생 대리 수업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다. 나는 다행히 군복무 2개월 단축(대학 교련 과목 이수자는 1년에 1개월씩 의무 복무 기간이 줄어들었다)으로 5월 제대가 가능했다.
학교로 돌아와 맨 먼저 찾아 간 곳이 학생 군사훈련 담당자 실이다. 남은 교련 시간에 결석. 지각. 조퇴 없이 100% 출석한다는 조건으로 수업 허락을 받아냈다.
남은 것은 중간 고사를 잘 치러내는 일이다. 군복무로 휴학하기 전 전공필수 수업(서양 정치사 과목) 시간의 항의(?)성 질문으로 미운털이 박혀 F학점을 받아 이번 학기에 재수강을 해야 하는 나는 담당 교수님과 친해져야 한다. 교수님은 복학생으로 다시 얼굴을 접한 나를 시니컬하게 대했다.
3학년 1학기는 우여 곡절 끝에 마무리 됐다. 1978년 당시에도 대학 캠퍼스는 이른바 민주화 운동 시위로 시끄러웠고 2학기는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 했다.
대부분 과제물로 수업과 시험을 대체해 비싼 수업료가 아까웠다.
그렇게 3학년이 지나고 1979년 대학 마지막 학년을 맞아 한다. 나와 같이 입학했던 동료 중 군 복무를 방위로 마친 친구가 있었는데 그(M)는 1978년도에 졸업을 하고도 1979년까지 취업이 되지 않아 학교 도서관에서 취업 준비 공부를 하는 졸업생 미 취업자 신세인 사람이었다. 나는 수업 시간이 끝나면 날마다 도서관에서 그 친구를 만나 함께 취업 걱정을 했다.이 M 친구는 앞선 해 4학년 때 언론사 취업을 위해 신문 방송사 기자 직종에 응시한 경험이 있었다. 또 다른 입학 동기생 H는 2년 전에 K 신문사에 기자로 취업했다고 했다. 우리는 정치외교학과 입학 동기생들이다. 민주화 운동이라는 사회 참여 활동에 정치외교학과 출신들이 앞장서는 바람에 취업 공고에서 조차 제외되는 시기였다. 대부분 국가 고시(사법. 행정 고시나 공무원 시험) 아니면 언론사 취업이 그나마 문호가 열린 분야였다. 당시 1970년대 말에는 민주화 시위 등으로 정치. 사회 분야는 다소 불안정 했으나 수출이 활발히 진행돼 대기업들이 성장하는 시기였기에 사회적으로 대기업 취업이 붐을 이뤄 정경대학(college) 내 경영. 경제학과(department) 출신들은 그룹사 취업에 몸이 달았다.

1979년 대학 4학년은 이래 저래 바쁜 신세였다. 미취업 동료들을 본 나는 졸업 전 취업을 위해 여러가지 대비책을 세워야 했다. 어떤 동료들은 몇 명이 의기 투합해 재학 중 오퍼상 사업을 시작하기도 했다.
나는 취업 대비책으로 당시 붐을 이룬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삼았다. 최후 안전판은 중.고등학교 교사로 나서는 것. 우리 정치외교학과 동료는 입학 당시는 25명 이었으나 복학해 보니 30명이 훨씬 넘었다. 이 가운데 교사 자격을 위한 교직 과목 수강자는 나와 또 다른 착실남 등 2명에 불과했다. 교사직은 대기업에 비해 급여가 적어 빛을 잃고 있었다. 더구나 교직과목을 이수해 일반사회 과목 준교사 자격을 얻으려면 4학년 초에 2개월 가량 교생 실습을 해야 하니 취업 준비에 그만 큼 시간을 빼앗기고 모두들 하찮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최종 취업 안전판 마련을 위해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해야 했고, 인기가 없는 분야라서 학점 따기가 비교적 쉬운 탓도 있었다. 남은 시간은 남들처럼 취업 준비 과목 자습에 몰두했다.
친구 M은 매일 도서관에서 언론사 취업 재수생으로서 정보 취득과 시험과목 공부에 골몰했다. 언론사 입사 시험 과목은 영어, 국어, 시사(상식), 논문이 대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