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우는 뇌, 생각하는 뇌

외우는 뇌, 생각하는 뇌

암기 능력에서 인간을 능가하는 침팬지가 화제다. 그러나 이는 놀랄 일이 아니다. 인간의 두뇌 구조는 단순 암기에 적합하지 않으며, 단순 기억에서는 이미 인간이 만든 컴퓨터에 추월당한 지 오래다. 두뇌의 진짜 중요한 기능은 여러 기억을 종합하고 분석하며 추론하는 기능, 즉 생각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경제협력개발기구의 조사에서 나왔듯이 우리 청소년들의 실력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다. “유아 교육부터 바꿔야 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인간의 두뇌는 컴퓨터와 다르다. 현대 컴퓨터는 계산을 담당하는 중앙연산장치(펜티엄 등)와 기억을 담당하는 저장장치(하드디스크·메모리 등)가 분리돼 있다. 저장장치는 위치 주소를 이용해 특정한 정보를 저장하고 읽어 들이는 매우 단순한 구조로 돼 있어 개개의 기억이 별도로 작동한다.

반면 인간의 두뇌에서는 계산장치와 기억장치가 혼재해 약 180억 개의 신경세포가 100조 개 정도의 연결고리(시냅스)로 상호 연결됨으로써 계산과 기억을 수행한다. 특정한 정보 저장을 위한 신경세포나 연결고리가 있기보다는 다수의 정보와 다수의 연결고리가 공동으로 관여한다. 하나의 정보를 기억하기 위해 많은 연결고리가 바뀌어야 하고, 이미 기억된 다른 정보를 조금씩 잃어버리는 특성으로 인해 인간의 두뇌는 단순 암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반면 매일 수백 개씩 신경세포가 죽어도 두뇌 능력에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이는 조물주나 진화가 사용한 생물 소재와 인간이 사용하는 무기물 소재의 차이로부터 서로 다르게 발전해 온 결과다.

인간의 두뇌는 위치에 따라 대체로 다른 기능을 담당한다. 즉 시각·청각·언어·기억·계산·감정·추론·행동 등 기능별로 각기 다른 위치에 있는 신경세포들이 다른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위치와 기능들도 상호 긴밀히 연결돼 있다. 예컨대 다양한 색깔로 표시된 단어의 색을 말하게 하면 ‘빨강’이란 단어를 초록색으로 쓴 경우가 빨간색으로 쓴 경우보다 더 시간이 걸린다(스트룹 효과). 이는 두뇌에서 다양한 형태의 정보가 상호작용을 하는 증거다. 따라서 이미 기억된 정보와 연계하고, 글씨로 쓰고, 그림을 그리고, 크게 읽는 등 감각 및 운동기관과 연계시키는 기억 방법이 효과적이다.

사회는 인간에게 단순히 기억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후진국에선 단순 기억에 바탕 한 노동력이, 개발도상국에서는 남을 본뜨는 이해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보를 융합해 스스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과학적 사고력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우리의 현실은 청소년 과학 실력의 평균 저하는 물론 상위권 학생들의 실력 저하가 더욱 두드러지는 상황이다. 반면 어려서부터 답 하나 고르기에 익숙한 한국인의 탁월한 족집게 실력과 암기 능력은 토플 등 국제공인시험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논리적 사고가 요구되는 논술조차 암기식으로 배우는 실정이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한 가지 능력이 발달하면 다른 능력이 퇴화되기 쉽다. 우리 청소년들의 두뇌가 점점 오래된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닮아 간다. 선진국 교수들은 한국 학생들을 ‘문제를 주면 (외운 실력으로) 잘 풀지만, 스스로 생각해 문제를 찾지는 못하는’ 개발도상국형 학생으로 알고 있다.

사회는 생각하는 두뇌를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려는 학생들을 탓할 수는 없다. “로마가 융성할 때는 로마인이 원하는 것과 로마가 원하는 것이 같았으나, 쇠퇴기에는 그렇지 못했다.”(시오노 나나미)

 외우는 사람보다 생각하는 사람이 더 인정받는 사회를 만들자.

이수영 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