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경영자에 도전한다

당신은 어느 정도 선에서의 문제 해결자가 될 것인가? 기업, 국가, 인류적인 문제 해결자, 인류경영자는 어떨까? 인류경영 쪽은 사실 공석입니다. 누가 인류를 경영할 것인가? 라고 할 때 자격요건은 인류의식을 가진 자만이 인류를 경영할 수 있습니다. NGO들이 인류경영에 참여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조직의 대표로써, 개인적으로 인류경영에 꿈을 꾼다는 것은 누구나 참여해 볼만합니다.  인류경영이라는 가치에 한번 도전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최고의 가치를 인류경영의 측면에 둔다면 정말 뜻있고 꿈이 있는 일이 아닌가, 정말 모든 사람들이 동참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꿈의 크기가 곧 그 사람의 크기라고 합니다. 전문성은 부하직원이 가질 수 있지만 꿈의 크기는 책임자가 가져야만 되는 일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 꿈이 우위로부터 태어나야 합니다. 사실 꿈이 최고의 것은 아닙니다. 사실 꿈을 태어나게 하는 핵심은 바로 가치입니다. 그래서 최고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최고의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가치에서 꿈까지(비전)까지 우리가 다뤄봐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첫째 원칙과 가치입니다. 코비박사가 말한 것이 원칙중심의 리더십입니다.
원칙과 가치를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원칙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래서 원칙에는 자연의 이치, 자연법칙이 속합니다. 원칙은 물리학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서 A는 B이다 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것을 말하죠. 예를들면 물리학에서 말하는 4가지 힘이 있지요. 핵력, 중력, 약력, 전자가력입니다. 이러한 힘의 기본원칙들 중에 핵력은 우리가 못느끼지만 중력은 우리가 느끼는 즉 만유인력입니다. 여기서 원칙과 가치가 달라지는데 원칙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은 모든 자연 현상속에서의 자연이치입니다. 내가 오늘 이 세상을 살 때는 중력이 나에게 맞는 더 가치있는 법칙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치입니다. 원칙 중에서 나에게 현재 필요한 원칙 그것이 바로 가치입니다. 만약 내가 달에 가면 중력원칙보다는 무중력원칙이 나에게 더 맞는 원칙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원칙중에서 내게 맞는 원칙과 최상위원칙이 있는데 이것을 우리는 최고가치라고 부릅니다. 코비 박사가 원칙중심리더십을 이야기 했다면 저는 가치중심리더십을 말하고 싶습니다. 가치중심 리더십은 언제나 원칙들 속에서 찾아내는 것이 되겠지요. 지금 내 상황 속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원칙은 무엇인가? 예를 들면 부부간의 원칙에는 군신간의 원칙을 적용하면 안됩니다. 부모와 자녀간의 원칙과 부부간의 원칙은 다르게 써야 하는데 그 시점에 맞는 것, 그 차이를 가치라고 하고 있습니다.

  가치와 이슈의 차이도 종종 혼동합니다. 가치는 너, 나 없이 모두에서 인정되는 것으로 산에서는 산사람이 생활하는 원칙이 있습니다. 산에가면 산사람의 원칙이 가치가 되는 것처럼 집단에 가면 그 집단만의 가치가 있죠. 즉 모든 집단의 공유가치가 가치입니다. 이슈는 그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당장 해결해야 할 공통된 문제, 공의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슈는 기간이 짧습니다. 그런데 이슈를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당장 배고픈 사람은 배고픔이라는 이슈를 가치로 생각합니다. 배고픔을 가치로 여기면 인생은 끝장입니다. 눈앞에 해결되지 않는 근본적인 문제들이 많은 사람은 역사적인 과업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왜? 거대한 일들은 눈앞에 들어오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게슈탈트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전경이라고 부릅니다. 지금 눈앞에 이슈가 되는 일이 많은 사람들은 정작 중요한 일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행여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서 내 앞에 해결되지 않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것이 진짜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진짜 장애물이 되는 것이죠. 여기까지 가치와 이슈, 가치와 원칙을 한번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가치란 무엇인가?’ 라고 말하면, ‘가치란 고수가 인정하는 지식이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위대한 인물들이 우리에게 ‘이것은 중요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가치입니다. 명작과 고전에 이러한 가치들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제가 스무살 때부터 명작과 고전을 읽었는데요 그 영향을 많이 받은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생각하길, 저는 비어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썼던 글들이 저라는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그래서 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자기 자신이 마음에 드십니까?’ 그러면 자기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대답합니다. 좀더 나은 자기 자신을 꿈꾸는데 그게 잘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럴 때는 ‘빨리 나를 비워주고, 차라리 나보다 더 낳은 좋은 글을 읽어서 스승의 글과 생각이 내것이 되게 하라. 내 생각이 아닌 그들의 생각. 그들이 내안에서 살게 하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제 안에는 수백 명의 저자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저자들이 저를 통해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일 뿐이죠. 그래서 저는 책을 많이 읽으면 교만하지 않고 되려 겸손하다고 봅니다. 왜냐면, 제 얘기가 아닌 그들의 생각을 한다는거죠. 내 생각이 아닌 그들의 생각 인류의식이라는 총체적인 생각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즉 내안에서 일어나는 생각이 그들의 생각과 연결되어 인류 공유적인 의식이라는 것이 내안에서 생성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내경험, 내 의견, 어떤 것을 듣고 내 생각과 조합해서 내 의견, 내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모든 것이 다 내 것이고, 내 것이 강하게 되고 내 것과 남의 것을 분리합니다. 그리고 자기 생각 안에 파묻혀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위대한 인물들과 함께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최고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치는 지식에서 발생합니다.  무엇이 가치를 만들어 내느냐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깨달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지식이다.’라고 말합니다. 지식은 상태를 반영합니다. 지금 돌아다니다가 사물을 봐도 그 사물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가치를 알지 못합니다.  지식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가치 있는 것들이 많지만, 그 가치를 누군가가 알려주거나 찾아내서 알 때까지는 가치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지식이 가치인가? 가치에는 특질의 가치(인류적인 진리, 종교적 가치), 양질의 가치, 범질의 가치(상식의 가치), 저질의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최고의 가치는 특질의 가치를 말하고 이는 종교와 같은 인류적인 진리를 말합니다. 최고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비교 가능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A와 B 둘을 놓고 뭐가 더 낫냐 비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더 낫냐 라고 가치를 판단했을 때 진짜 가치가 되기 때문에 가치를 비교하려면 비교 가능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기독교를 받아들이기 전에 불교와 힌두교를 배워보고 비교해서 판단 했을 때 진짜가치가 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교하여 판단하지 않고 전습합니다. 누가 중요하다고 하니까 권위논증에 의해서 ‘저 사람이 중요하다고 하니까 나에게도 중요하다’ 라는 식으로 가치를 수용하게 됩니다. 보통 이렇게 가치를 수용하게 되는것은 문화적 가치가 되죠. 그러나 비교 가치를 만들어 내는 사람만이 자기 안에 진짜 탁월한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상가들을 보면 다양한 사상들을 종합하고 비교해서 무엇이 위이고 아래인지를 자기 나름대로 평가를 하고 판단 합니다. 그렇게 해서 높은 가치를 소유하게 되는것이죠. 비교가치를 갖는 사람만이 높은 가치를 갖게 됩니다. 여기까지 ‘가치를 발견하라’는 내용으로 몇 가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가치를 찾는 과정에서 다뤄야 할 또 다른 것이 있습니다. 가치가 만들어내는 것은 목적과 목표, 비전입니다. 흔히 대부분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목적, 목표, 비전, 사명, 꿈, 가치, 세계관 이런 것들을 말하면서도 이것들이 상호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생각없이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치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입니다. 원칙들 가운데 오늘 이 현장에서 무엇이 옳으냐? 라고 볼 때 옳고 그름의 문제는 가치의 문제입니다. 목적을 말하자면, 모든 목적은 가치에서 태어납니다. 옳은 것을 통해서 나는 그 목적을 설정하겠다. 이렇게 해서 자기 자신이 그것을 취하게 됩니다. 대체로 목적과 목표는 어떤 차이가 있느냐면 목적은 방향성입니다. 목적은 달성가능하지가 않습니다. 목표는 달성가능한 지점입니다. 목적이라는 방향 안에서 목표를 세우면 됩니다. 저는 목회자니까 저의 가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제가 가져야 할 삶의 목적입니다. 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목적을 놓고 비교하면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목표를 놓고 이야기 하면 제각기 달라집니다. 목표의 예를들면 목사는 하나님 백성양육을 교회를 통해하고, 기업은 이익을 사회에 공헌함으로써, 교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인재를 양성하는것입니다. 구체적인, 도달 가능한, 정량적인, 계측가능한 목표를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목적과 목표를 묶어주는 것이 바로 비전입니다. 비전은 사실 목표와 유사한 개념입니다. 단지 목표라는 말을 쓰는것은 계측 가능한 형태이고, 비전이라는 개념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어린 양과 사자가 뛰노는 곳 이라고 하면 그것이 비전이라는 개념을 잘 나타내어 줍니다. 가치, 목적, 목표, 비전에 대해서 영역별로 살펴보았습니다. 이렇게 가치, 목적, 목표, 비전이 형성이 되면 목표와 비전에서 드디어 사명이 발생하죠. 사명은 목표달성의 임무입니다. 즉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내가 할 일 즉 프로젝트입니다. 임무가 태어나면 그때 사명선언서를 작성 할 수 있습니다. 코비 박사가 사명선언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사명선언서의 예를 좀 들어 보겠습니다.

류태영 박사의 사명선언서
1. 하나님을 신봉하며 주 안에서 살아야 한다.
2. 민족을 사랑하고 국가를 위해 일하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
3. 부모님을 공경하고 효를 실천하는 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
4. 친구를 잘 가려 사귀어 장래에 같이 일할 수 있는 동료를 지금부터 모으
   고 희망 속에서 힘을 길러야 한다.
5. 일할 수 있는 힘은 지 덕 체 로부터 나온다.

제임스 가필드 (미국 20대 대통령)의 사명선언서
1. 게으르지 말고 수입 범위 내에서 생활하자.
2. 약속은 적게 하고 진실을 말하자.
3. 좋은 친구를 사귀되 끝까지 사귀자.
4. 남을 나쁘게 말하지 말자.
5. 요행을 바라는 일은 게임이라도 피하자.
6. 맑은 정신을 흐리게 하는 음식은 피하자.
7. 비밀은 나의 것이나 남의 것이나 지키자.
8. 돈은 마지막 순간까지 빌리지 말자.
9. 행동에 책임지고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자.
10. 잠들지 전에 반성의 시간을 갖자

간디의 사명선언서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다음과 같이 결의할 수 있게 해 주소서;
나는 지상의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오직 신만을 두려워할 것이다.
나는 누구에게도 악한 마음을 품지 않을 것이다.
나는 누가 뭐래도 불의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진실로 거짓을 정복할 것이다.
그리고 거짓에 항거하기 위해선 어떤 고통도 견디어 낼 것이다.

  이와 같은 사명선언서가 바로 가치, 목적, 목표, 비전이라는 틀을 통해 태어난다는 것이죠. 이러한 과정 없이 태어난 사명선언서를 만든 사람들은 뭔가 머리를 잘라놓고 사명선언서를 만든 것과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명선언서를 먼저 만들거든요 그건 정말 군부대에서 북한에 어떤 프로젝트를 갖고 갈 때 왜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임무만 갖고 가는 꼴이죠. 완벽한 인생설계는 가치에서 임무까지 생각할 때 비로소 완성 되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목표와 비전에서 사명이 발생할 때 한사람의 인생설계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최고의 가치를 우리가 설정했다고 봅시다. 우리가 이쯤에서 인생설계를 해 볼까요?  

  인생설계와 더불어 자서전쓰기도 합니다. 자서전쓰기는 자기인생을 80세로 보고, 거꾸로 자기 삶을 회고해 보는 것입니다. 자신이 80세 되었다고 가정하고 자기의 자서전을 쓰게 합니다. 이것은 중학교 1학년 때 쓰게 합니다.  미래에서 과거를 써 나가는 거죠. 이렇게 써 나가니까 이 아이들의 태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겠죠. 인생에서 중요한 일들은 꼭 실패한 다음에 생각나더라구요. 가장 중요한 것이 처음에 생각나지 않고, 나중에 생각날 때 후회가 됩니다. 꿈의 학교의 아이들은 중학교 1학년 때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길들을 여러 사람들의 책을 읽고 결정을 해 보는 것이지요. 그러니 아이들에게 얼마나 유익하겠습니까! 중학교 때 책을 읽고 삶을 보고 자기 나름대로의 미래를 결정하니까 아이들에게 매우 유익합니다. 최고의 가치를 찾는 과정에서 설계를 합니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중학교 하나를 설립한다고 해도 어마어마한 분량의 계획서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60년 80년을 사는 한 사람의 인생을 설계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우리에 대한 대접을 소홀히 한 것이 아닌가 라는 말입니다. 최소한 인생설계를 한번쯤은 체계있게 심도있게 해야 하지 않나, 기회가 된다면 2박 3일 세미나로 하면 어떨까요? 혼자하면 해내는 사람들이 거의 없더라구요. 그러나 책을 다 읽고 와야 할 수 있습니다. 안 그러면 자기 속에 들어있는 것을 가지고 하거든요. 위대한 인생을 끌어 들여서 내 인생으로 미리 계획해 보는 것이 바로 인생설계사라는 개념입니다.

  자신을 개발하는 측면에서 볼 때 저는 네 가지로 정리를 해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여기 계신 분들이 자기 건강에 대해서는 신경 써야 할 분들인데 그 첫 번째가 ‘창조적 건강에 도전하라’ 입니다. 창조적 건강이라는 말은 제가 사용하는 말인데요. 몇 가지 설명을 드린자면, 인간이 현재까지 건강이란 말을 썼을 때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건강하면 몸의 건강. 그러나 시대가 발전하면서 몸 건강과 함께 두뇌건강이라는 주제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두뇌 건강이란 것은 머리가 좋은것을 말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몸의 건강은 영양학을 중심으로 이루어 졌는데 최근 대뇌생리학이 연구되면서, 두뇌를 중심으로 한 영양학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몸에 유익한 음식이 머리에는 치명적일 수도 있고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머리에 유익한 음식은 100% 몸에 좋다는 것입니다. 두뇌의 활성화는 탁월한 정신건강을 보장하고 그걸로 인해서 신체 건강에 있어 장수, 노화방지, 평소에 활력있는 건강이 보장됩니다. 머리도 좋아지고, 몸도 건강해지고. 최근 이 분야의 책을 30권정도 읽고 제 안에서 총체적으로 정리해서 이제 표현이 가능합니다.
  한마디로 요즘은 인간에게 필요한 필수영양소로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에 비타민과 미네랄을 첨부하여 필수 영양소를 다섯 가지로 봅니다. 신체의 최적화 개념으로 어떤 음식이 좋은가? 라고 할 때 몸을 이루는 영양소는 단백질입니다. 그래서 단백질의 종류가 몸의질을 결정합니다. 마찬가지로 대뇌의 재질이 단백질이라고 생각하지만 놀랍게도 지방질입니다. 지방이 70%이고 나머지가 단백질입니다. 그러므로 지방이 어떤 지방이냐에 따라 뇌 세포인 뉴런이 활동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지방은 포화지방과 불포화지방으로 나뉘는데 뇌세포가 포화지방으로 가득차면 마일린이 파괴되어 정보간의 교환이 되지 않아서 학습속도가 떨어집니다. 뇌 안에 지방 중에는 오메가3지방과 오메가6지방이 있는데 오메가3지방이 뇌의 최적화 지방입니다. 오메가3지방에는 올리브유, 참기름, 들깨기름, 정어리등의 등푸른 생선기름입니다. 이 지방이 몸에 들어가면 뇌 세포가 가장 좋아합니다. 노화가 이뤄지는 이유는 활성산소가 세포와 충돌하면서 세포를 상처주고 뇌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활성산소는 음식물을 소화시키고 나면 나오는 배기가스입니다. 활성산소를 줄이고 장수하기 위해서는 소식을 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엔 활성산소를 방지하는 중화제 비타민 C가 노화 방지의 중요한 개념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단백질은 식물성 단백질, 미네랄 쪽으론 녹황색 야채를 많이 먹는 것이 여러 가지 영양소를 보충시키는 좋은 방법입니다. 미량원소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특별히 집중력을 강화하는 데는 인이나 황같은 요소들이 두뇌의 생각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미량원소들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뇌는 단백질이나 탄수화물을 먹지 않고 완전한 피 속에 들어있는 포도당을 먹습니다.  ‘기적의 두뇌’ 라는 책을 읽으시면 집안 식단이 통째로 바뀔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적 건강에 도전하라’입니다.

  두 번째 행복의 감성으로 바꾸어라. 행복이라는 감성은요 이렇게 보시면 되겠어요. 감성이란 우리 몸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느낌입니다. 요즘 IQ, EQ 시대라는 말이 나오는데 사실 EQ시대가 아닙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생각하는 동물입니다. 탁월한 생각을 갖는 것이 인간의 자부심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방해하는 것이 감성입니다. 우리가 EQ를 개발한다는 것은 안정된 감성을 개발한다는 것입니다. 불안한 상태는 지성발달을 정지 시키기 때문입니다. IQ를 기르려면 EQ가 안정되게 발달해야 합니다. 인간됨의 근본은 지성입니다.

  그렇다면 감성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감성을 행복의 감성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한데 앤서니 라빈슨의의 ‘잠자는 거인을 깨워라’는 책을 보면 감성에 관해 잘 나와 있습니다. 저는 98년도에 감성에 대한 책을 보면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감성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따라서 인간의 행복이 결정됩니다. 사실 감성의 주인은 제 자신이죠. 대부분의 감성은 뭘 중심으로 움직이느냐? 라고 묻는다면 답변이 나옵니다. 감성은 인간의 욕구, 욕심에 의해서 동작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언제 즐겁고, 언제 슬픈가요? 스피노자는 실제로 모든 감성을 딱 2가지로 정리하였습니다. 인간의 모든 감정을 총체적으로 묶어서 기쁨과 슬픔으로 나누었습니다. 내 욕구가 만족하면 기쁨, 불만족하면 슬픔입니다.

  이 원리를 생각한다면요 이제 굉장이 놀라운 빅뉴스에 도달합니다. 내가 움직이는 감성이 욕구라면, 이 세상은 욕구가 안 채워지는 쪽이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슬픔이 많은 사람은 한마디로 욕심이 많다’ 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것이 상식법칙입니다. ‘이기적이다’ 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어떻게 슬픔을 갖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인가? 그 방법은 주인을 바꾸는 것입니다. 내 뜻에 초점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면 기쁨이고,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지 않으면 슬픈 것 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앤서니 라빈슨은 이것을 ‘미래의 결과를 가지고 이야기 하라’고 합니다. 즉 내가 지금 당하는 고통이 있다고 봤을 때 장기적으로 좋다라고 판단이 된다면 기뻐하는 쪽으로, 장기적으로 안 좋다면 슬퍼하라고 하는 것이지요. 저는 이것을 좀더 나아가서 ‘진리가 이뤄지는 일이라면 기뻐하고, 진리가 실패하는 일이라면 슬퍼해라’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나는 남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데 나는 손해인데 남이 기뻐한다면, 그래서 모두에게 즐거움이 생길 수 있는 일이라면 나는 희생해도 된다는 감성이 생깁니다. 이것이 감성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 삶은 욕심으로부터의 해탈, 석가가 말한 해탈에 이릅니다. 사도바울은 성령을 따르면 욕심을 따르지 않고 욕심을 따르면 성령을 따르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를 따르냐 라는 주인의 문제입니다. 내가 어떤 가치를 따르냐 라는 문제인 것이죠. 만약에 최고의 가치를 내 주인으로 삼는다면 지금부터는 기쁨과 슬픔이 가치를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것이죠. 가치가 이뤄지면 내가 지금 힘들어도 기쁘고, 내 욕구와 상관없는 새로운 창조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행복의 감성입니다.
  그다음이 세 번째, 탁월한 지성개발 습관입니다. 이 지성개발은 이 아래 학습 기술과 연관이 되어 있는데요. 지성개발습관은 우리가 먼저 알아야 될 부분이 언제나 어떤 개발을 하려고 하면 알아야 할 것이 이론이 있고 실기가 있지 않습니까? 실기에 대한 훈련이 있는데 지성개발에 있어서도 먼저 알아야 할 몇 가지 지식이 있습니다.

  첫 번째 알아야 할 것이 지성이란 무엇인가? 이죠. 지성이란 지능과 지식과 지혜로 구성됩니다. 물론 지혜라는 것은 지능과 지식의 결과로 생기는 최종적인 결정체입니다. 지혜는 삶의 열매로 나타나죠. 지혜있는 사람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혜가 없었어’ 라고 말한다는 뜻은 분별을 잘못했다는 말입니다. 지혜란 판단, 분별을 나타냅니다. 지혜있다는 말은 분별을 잘했다는 말이고, 분별을 잘 했다는 말은 일을 성사하는 쪽으로 끌어갔다는 말이죠. 그러면 지혜를 만들어 내는 요체는 무엇이냐? 지능과 지식이었습니다. 지능은 생각하는 힘이었고 지식은 그 지식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지식없는 사람, 정보가 부족한 사람은 판단이 소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능과 지식을 갖추는 것이 곧 지혜를 만들어 내는 길입니다. 물론 지능과 지식이 묶여져서 경험이라는 통로로 나아갑니다. 그러니까 지능, 지식, 경험이 묶여진 다음에 나오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성의 구성요소를 파악했으니 각 요소별로 개발하는 방법을 안다면 우리가 처한 상태를 빨리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지능은 생각하는 능력이니까 생각하는 훈련이 필요하겠죠. 생각하는 방법과 훈련인데 그것에 가장 좋은방법이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설명이 필요합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사물을 인식, 분석, 종합, 이해, 응용, 평가하는 여섯 가지로 나눠집니다. 궁극적으로 이것을 다시 세 가지로 나누면 사물을 나눠본다, 종합한다, 평가한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생각하는 기술, 지능의 기술이라고 부릅니다. 누가 어떤것을 ‘잘한다, 생각하는 게 탁월해’ 라고 한다면 이 세 가지가 탁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지능이 한번 개발되면 더 이상 개발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지능이 지속적인 개발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러한 세 가지 요소를 가지고 지식이 만날 때 놀라운 지성능력이 발달됩니다. 이것을 위해서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합니다.

  사실 독서만이 지성개발에 방법은 아닙니다. 바둑, 장기, 수학도 지능에는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지식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수학의 경우 지능은 개발시키지만, 지식은 개발시키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학을 많이 해도 세상을 이끌어가지 못합니다. 피타고라스, 파스칼외에는 수학자들이 세상을 이끌었던 적은 없습니다.

  역사를 이끌어갔던 모든 리더나 사상가들은 글을 가지고 세상을 이끌어 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 번째로 제시하는 방법은 게임도 아니고 수학도 아닌 책입니다. 그런데 책이 세상을 이끌어 갔다고 말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지 않느냐 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책을 읽은 사람이 세상을 이끌어 갈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됩니다. 책 읽는 방식으로 문제가 압축되는 것이지요. 책 읽는 방식은 학습기술 쪽에서 세부적으로 다루겠습니다. ‘책읽는 방식이 탁월한 지성 개발의 방법이다’ 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사람이 제일 생각을 많이 하는 상태가 언제인가? 알고 봤더니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가 생각을 많이 하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사상가들은 언어를 통해 이루어졌다, 지능계발의 총체는 언어이다, 언어는 바로 지능입니다.

  어째든 탁월한 지능개발은 습관으로 정착되어야 합니다. 어느 교육기관에서 잠깐 받는 교육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예를들면 얼마 전에 ‘아이는 99% 엄마의 노력으로 완성된다’ 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인 장병혜 박사는 미국에서 남편을 만났는데 세 아이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6살 7살 된 아이들이었는데 세 아이는 탁월한아이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큰 아이는 하버드 법대를 졸업하고 국제 변호사가 되었고, 둘째는 예일대 경제학과를 나와 유능한 사업가가 되었고, 셋째도 16살의 예일대 수석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고 이렇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도서개요를 통해서 저자의 주장을 정리하고 이 사람의 교육의 성공요인 그리고 다시 정리해서 권면하는 식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책을 읽고나서 어떻게 읽었느냐는 것이죠. 책을 읽고 ‘이책 좋다’ 라고 넘어가는 것과, 책을 읽고 간단하게라도 정리 하는 것의 차이라는 것이죠. ‘읽는 방식의 차이가 생각의 차이를 결정한다. 읽는 방식의 차이가 지식의 내용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성개발 습관이라는 것은 배우는 습관과도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매일 일상적이 태도와 관련 있습니다. 기억 나는 말! ‘훌륭한 사람은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닫는다’ 보는 대상은 하나거든요. 우리 모두가 이 책을 똑같이 보았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랬을 때 여기서부터 얻는것이 몇 개냐는 것이죠. 얻는 방법은 단순히 지식을 얻는 것과, 이 사람을 비평함으로써 새로운 걸 얻는 것도 있죠. 얻는 방법의 차이가 결국 한 인간의 능력을 결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 읽는 책, 대화하는 것도 같습니다. 대화를 한다고 할 때 그 대화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대화가 있고 수용하는 대화가 있듯이 읽는 방식의 차이가 지식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얻는 방법의 차이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느냐 아니냐로 나뉘게 합니다. 하나를 보고 열 가지를 발견하는 사람이 탁월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이건 습관이지 일순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그것을 습관화 시킬 것 인가는 하는 것은 배움이라는 틀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네 번째 영적리더십인데요 리더십을 말할 때 왜 영적리더십을 얘기하는가? 이건 목회자이어서가 아닙니다. 일류경영에 도전하려면 일반리더십으로는 힘듭니다. 인류경영에 도전하려면 영적리더십을 갖춰야 합니다. 인간내부에는 죽음과 삶에 대한 근본적인 공포가 있습니다. 이것이 밖으로 들어난 것을 꽁트는 종교의근간이라고 보았습니다. 즉 왜 사느냐는 라는 것은 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 이지만, 죽고 싶지 않다는 근본욕구가 영생에 대한 이야기를 창조시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에 대한 희망을 탄생시키고, 종교를 탄생시킵니다. 사회적 철학적으로 인간은 죽음과 연관된 종교성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결국 죽음보다 더 가치 있는 가치를 제공하라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영적가치이죠. 죽음보다 더 가치있는 가치 그것이 바로 영적리더십입니다. 죽음을 대신할 만한 가치를 제공하지 않으면 인류를 통합하지 못합니다. 헌신자 순교자를 보십시오. 국가주의에도 전쟁으로 국가를 위해 죽는 사람이 있는데, 인류를 경영하려면, 죽음보다 더 가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리더십을 갖는 것이 자신을 개발하는 최종적인 요체입니다. 이 네 가지는 한 사람의 완성된 영향력을 갖게 하는 요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모임 때에는 책을 한권 읽어 오시기 바랍니다. 독서불패, 독서기술을 과제 용지에 맞춰 해 오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