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 파동. 주파수. 공명

물의 결정 사진을 통해 우리는 의식이나 말이라는 에너지가 눈에 보이는 것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음. 생각. 파동이 물의 결정에 변화를 준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마음과 말의 중요성을 새삼 느낍니다.

 어떻게 물이 사람의 마음을 비쳐낼 수 있을까? 의식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모든 존재는 진동입니다. 삼라만상은 진동하고 있고, 제각기 고유한 주파수를 발하고 독특한 파장을 가집니다. 양자역학은 물질이란 본래 진동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물질을 잘게 나누어가면, 모든 것이 입자이면서 파장으로 변하는 불가사의한 세계와 만나게 됩니다.

 모든 것은 늘 진동하고 움직입니다. 그리고 초고속으로 끊임없이 점멸합니다.

 <반야심경>에 다음과 같은 귀절이 있습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눈에 보이는 것은 실체가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실체가 있다.”

물질은 눈에 보이지만, 진동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인간도 진동합니다. 사람은 제각기 고유한 진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진동을 느끼는 감각을 누구든 갖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사랑의 파동이, 나쁜 짓을 하는 사람에게는 시커멓고 사악한 파동이 일어납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 노래하고 춤을 추며 즐기는 장소에서는 밝고 좋은 파동이 소용돌이칩니다. 그 기세로 탁하고 고인 에너지를 날려버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진동하고 고유한 파동을 가집니다. 그 원리를 알면 이 세계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 것입니다.

  만물이 진동한다는 것은, 모든 것이 소리를 낸다는 말도 됩니다.

 물에 음악을 들려주면 왜 결정이 변할까요? 또한 소리를 들려주거나 문자를 보여주면 왜 전혀 다른 얼굴을 보이는 걸까요. 그것은 모든 것이 진동이기 때문입니다. 물은 물질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주파수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그대로 전사(轉寫)합니다.

  음악이나 입에서 내보내는 말이 진동이라는 것은 누구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음악은 다양한 주파수의 진동을 즐기는 예술이고, 불교의 의식에서 독경을 하는 것도 목소리를 냄으로써 어떤 치유의 파동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자기암시를 할 때 거울을 보면서 또는 자기 말이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말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도 말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말을 종이에 적어 물에 보여주어도 그 결정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종이에 적힌 문자 자체에 그 형태가 발하는 고유한 진동이 있고, 물은 그 문자의 고유한 진동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문자란 언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발음기호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인간관계에서 같은 파장을 가진 사람은 서로 끌어당겨 친구가 되고 전혀 다른 타입의 인간은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도 서로 무관심합니다.

  ‘똑 같은 주파수는 서로 공명한다.’ 이것이 주파수의 원리입니다.

  마음을 사랑과 감사로 가득 채우면, 사랑해야 하는 것, 감사해야만 할  멋진 일들이 저절로 찾아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원한이나 불만, 슬픔과 같은 파동을 발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한층 더 원한을 품어야 할 상황, 슬픔으로 가득찬 세계를 여기로 끌어오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어떤 세계를 선택하고,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그 모든 것이 당신의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도 사랑과 감사의 말로 기도를 드리면 그 진동이  전달 될 것입니다.

우리가 절대자에게 마음속 깊이 기도를 드리면 응답받는 것도 같은 원리가 아닐까요? (다음 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