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성격과 운명?

한국인의 성격과 운명에 대하여

황상민·연세대 심리학 교수


몇 사람 모였을 때, 거창하게 늘어놓았던 시국 한탄이나 대통령 욕도 시들해지면, 사람들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이럴 때, 우아하게 관심을 끄는 소재가 있다. 용하다는 점쟁이, 또는 운명 철학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신이라고 핀잔이 나올 것 같지만 놀랍게도 학력과 관계없이 누구나 관심을 표현한다. “올해 내 운세가 좋을까?”와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단지 운명을 안다는 것, 미래를 알아맞히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며, 누가 그런 ‘신통방통’한 ‘영발(신기)’을 발휘하는지 몇 가지 사례로 수다를 떠는 것이다. 누구나 솔깃해하면서 친구나 선후배 누군가의 경험도 풀어 놓게 된다.

삶이 답답하고 풀리는 일이 없다고 느껴질 때, 아니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고 믿을 때, 사람들은 용한 분들을 찾는다. 그렇다면 그런 분들은 정말 신기한 ‘영발’로 답답한 마음을 읽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일까? 아니다. 놀라운 일은 ‘영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답답해하는 바로 그 사람을 통해 이루어진다. 비밀의 답은 ‘너 자신을 알라’는 말 속에 있다.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읽고, 그것에 견주어 그 사람의 미래를 설명하는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하는 일마다 잘 안 풀려요.” 이런 사람의 성격을 잘 살펴보면 하는 일마다 안 풀리게 되어 있다. 쉽게 싫증을 내고, 한 가지 일을 지속적으로 하기 어렵다. 이런 성격이라면 잘 풀릴 수가 없다. 뭐든지 간에 제대로 되려면 일정한 시간이 걸리고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복권 당첨과 같이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 생겨나면, 그것은 보통 나에게 불행이 되기 쉬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신이 무엇을 원한다면, 먼저 자신의 성격을 잘 파악해야 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그리스 델포이 신전의 신탁에 쓰인 경구였다. 이 신전에서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전쟁의 승패나 중요한 일에 대한 신의 계시를 받았다. 그런데 그 신의 계시는 모호한 말 투성이였다. 명확하지 않은 계시의 의미를 파악하여 미래를 알 수 있는 비법은 바로 ‘자신을 아는 것’이었다. 어떻게 자신을 아는 것이 현재의 문제와 미래의 일을 알게 하는 것일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 그것은 바로 나의 성격에 대한 파악이다. 점쟁이가 아무도 모를 비밀을 알거나 족집게처럼 맞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바로 그 앞에 있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스스로 자신에 대해 아는 것보다, 자신을 보는 다른 사람이 무심코 던지는 이야기들이 더 자신을 잘 나타내고 또 맞는다고 믿으려는 심리가 있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더욱 그러하다.

바둑에서 훈수 두는 사람이 더 판을 잘 보듯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은 잘 몰라도 옆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비교적 정확하다. 내가 볼 수 없는 나에 대한 단서를 다른 사람이 더 잘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신기한 현상이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라는 노래 가사처럼 우리 각자는 너무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내가 어떻다’뿐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모두 너무나 많은 나의 모습이다.

‘자신을 아는’ 것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성격 유형’ 또는 ‘성격 프로파일’이다. 성격을 알면 현재 하는 일이 잘될지, 앞으로 하는 일이 어떻게 될지, 어떤 어려움을 느낄 수 있을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사주명리학’을 통계라고 주장하는 이유도 이것이 성격에 관한 다양한 단서로 설명하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성격은 각자가 처한 상황 속에서 각자의 삶을 구체적으로 만든다. 미래 삶의 나침반은 바로 나 자신이다.

우리 사회의 생존 법칙은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나? 남 눈치도 봐야지’이다. ‘눈치코치도 없이’라는 말이 성격의 한 부분처럼 언급된다. 그러나 자신을 알지 못한 채 주위만 살피게 되면 어두운 미래만 있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알아도, 내가 어떤지를 알 수 없다면,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살아가는 이유’가 더 불분명해진다. ‘경제’로 포장되는 악착같은 ‘돈 벌기’나 ‘디자인’으로 꾸며지는 보여주는 ‘쇼’만 한다.

국가 브랜드가 아무리 중요해도, 외국인이 생각하는 한국, 외국인이 보는 대한민국만을 이야기하면 스스로를 보지 못하고, 남의 눈으로 자신의 삶을 평가하는 안타까운 사람이 된다. 여전히 미래가 없다. 선진국 문턱에서 10년 이상이나 제자리걸음을 하는 이유이다.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다른 나라보다 잘한다고 선전하지만, 미래가 불안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의 나의 모습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에 미래에 대한 아무런 통찰을 발휘할 수 없다. ‘나를 아는 것’이 만사의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