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끄면 불안해질까봐” 美과학지 TV중독 분석
인간을 포함한 동물은 새로운 자극이 주어지면 그쪽을 바라보거나 몸을 튼다. 자극이 어느 쪽에서 오며, 그에 따라 다가올 위험을 감지하고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일종의 생존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정향반응(orienting response)이라고 한다.
TV 프로그램이나 광고는 생존을 위해 비상시에 써야 할 정향반응을 끊임없이 쓰도록 강요한다. 정향반응은 자극이 있을 때 본능적으로 가동되는데 TV는 1분에 다섯번씩이나 이를 가동하도록 자극한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정향반응에 따른 생체 변화는 뇌혈관이 팽창하고, 심장 박동이 느려지며, 주요 근육 혈관이 수축된다. 뇌에 자극을 주는 뇌파의 일종인 알파파의 발생이 크게 줄어든다.
미국의 과학잡지인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최근호는 이런 내용의 TV 중독이 심리학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특집으로 게재했다.
이에 따르면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TV를 켜면 긴장이 풀리며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했다. 이들의 알파파는 독서할 때보다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즉 TV 시청이 뇌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자극을 적게 주는 것이다.
그러나 TV를 끄자 이들은 편안한 상태가 금방 긴장 상태로 바뀌고, 어느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해졌다. TV를 보고난 뒤엔 그 전보다 기분이 특별히 좋아지거나 집중을 잘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TV 시청 뒤에 나타나는 불만족은 TV를 하루 4시간 이상 보는 사람일수록, 빈곤층보다 중류층일수록 더했다. TV를 시청하는 시간에 다른 보람된 일을 할 수 있었는데 못했다는 후회 때문이다.
이 때문에 TV를 보면서도 즐거운 마음 상태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TV 보는 데 썼다. 이는 신경안정제와 작용 원리가 비슷하다. 약효가 떨어지면 마치 불안과 고통이 엄습할 것 같아 계속 복용하거나 양을 늘리는 것과 같다. TV도 끄고 나면 이완됐던 긴장이나 편안함이 사라질 것 같은 불안감에 ‘감히’끄지 못한다는 게 연구진의 분석이다.
TV중독은 가족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실험에 참가한 가족들은 주기적으로 일주일 또는 한달씩 TV 시청을 하지 않는 기간을 정했다. 그러자 가족들 간에 말싸움을 하거나 감정이 상하는 일이 많이 일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일은 일반 가정에서도 자주 일어난다는 게 연구자들의 말이다.
심리학자들 사이에서 TV는 이제 ‘바보상자’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넘어 생존 본능까지 착취해가는 ‘흡혈 상자’라는 별명이 붙고 있다.